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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여행] 4박 5일의 진실, 여름의 덫

아, 내가 진짜 왜 갔을까. 여름에 세부를. 가게는 또 얼마나 바쁜 시기인데, 다 내팽개치고 4박 5일이나 자리를 비웠어. 마흔 넘으면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쉬러 가는 여행이 더 피곤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놈의 ‘휴양지’라는 말에 또 속아 넘어갔지. 그래도 이왕 돈 쓰고 고생하고 온 거, 기록은 남겨둬야 나중에라도 ‘아, 이때 이래서 별로였지’ 하고 기억이라도 할 거 아냐. 혹시라도 나처럼 여름 세부를 만만하게 보고 떠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 후기가 약이 될지도 모르겠네.

일단 공항에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습기가 온몸을 감싸. 6월이면 우기 시작이라더니, 비는 안 오고 그냥 찜통이야.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 미터기 켜달라는 말이 그렇게 힘든가. 몇 번 실랑이하다가 그냥 그랩 불렀어. 속 편하게. 앞으로 세부에서 이동은 무조건 그랩이다, 첫날부터 그렇게 다짐했지.

막탄에 있는 숙소는 그냥 평범했어. 수영장 하나 보고 고른 건데, 사진만큼 크진 않더라고. 그래도 뭐, 이 더위에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내 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건가. 짐 대충 던져두고 저녁 먹으러 나갔는데, 뭘 먹어야 할지도 막막하데. 그냥 숙소 근처 식당 들어가서 아무거나 시켰는데, 영 입맛에 안 맞아. 필리핀 음식이 원래 이런 건가, 첫날부터 앞날이 캄캄했어.

다음 날은 그 유명하다는 ‘세부 디스커버리 투어’인지 뭔지를 예약해 뒀었어. 스노클링하고 뭐 이것저것 한다길래.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나갔는데, 와, 사람이… 사람이 정말 너무 많아. 배 하나에 대체 몇 명을 태우는 건지. 시장통이 따로 없더라. 바다로 나가니 좀 시원하긴 했는데, 스노클링 포인트에 도착하니까 또 사람이 바글바글해. 물고기 구경을 하는 건지 사람 뒤통수 구경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예쁜 산호? 그런 거 없어. 다 죽었거나 사람들이 다 밟아놔서 허옇게 변해있어. 물고기는 좀 있긴 한데, 사람들이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 먹으려고 달려드는 게 좀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투어에 포함된 점심은 또 어떻고. 그냥 구색만 갖춘 수준이야. 배고프니까 먹긴 먹었는데, 이걸 돈 주고 먹으라 그러면 절대 안 먹지. 온종일 사람에 치이고, 덥고, 짠물에 절여져서 숙소로 돌아오니 그냥 기절하듯 잠들었어. 이게 휴양이야, 극기훈련이야.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는 일부러 뺐는데, 안 가길 천만다행이다 싶었지. 거긴 이거보다 더하면 더했겠지.

셋째 날은 막탄 시내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나섰어. 마젤란의 십자가가 그렇게 유명하다길래 가봤지. 조그만 정자 안에 웬 커다란 십자가 하나가 덩그러니 있더라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곤 하는데… 글쎄, 이걸 보려고 그 땀을 뻘뻘 흘리며 온 게 좀 허무했어. 그냥 인증샷 하나 찍고 바로 나왔어. 너무 더워서 뭘 구경할 의욕 자체가 안 생겨.

저녁에는 큰맘 먹고 레촌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갔어. 필리핀식 통돼지 바비큐라는데, 이건 좀 기대가 됐거든. 결과적으로 말하면,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야. 돼지 껍질 부분은 정말 예술이야.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고 고소해서 계속 집어 먹게 돼. 근데 살코기는 너무 기름지고 느끼해. 몇 점 먹으니까 물리더라고. 껍질만 따로 팔면 안 되나. 맥주랑 껍질만 먹으면 딱 좋겠는데. 어쨌든 세부에서 먹은 것 중엔 이게 제일 기억에 남네. 좋았던 걸로.

세부 바닷속에서 만난 작은 물고기들
세부 바닷속에서 만난 작은 물고기들

4박 5일 일정에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깨달았어. 세부에서는 뭘 하려고 애쓰면 안 된다는 걸. 넷째 날은 그래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냥 숙소에만 있었어. 오전에 수영장에서 잠깐 놀다가, 더워지면 방에 들어와서 책 보고, 낮잠 자고. 차라리 이게 훨씬 낫더라. 지프니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트라이시클은 탈 생각도 안 했지. 첫날 택시 실랑이와 둘째 날 단체 투어의 악몽을 겪고 나니,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고라는 걸 알게 된 거야.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손님들 상대하는 것보다 여기 나와서 돌아다니는 게 더 기 빨리는 일이었어.

이제 집에 간다 생각하니 그렇게 아쉽지도 않더라. 오히려 빨리 내 가게로,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공항 가는 길에 보니 며칠 전 지진도 났다던데, 여행 내내 아무 일 없던 게 그나마 다행인가. 돌아보면 바다는 예뻤어. 에메랄드빛 바다. 그거 하나는 인정. 근데 그 바다 하나 보려고 이 모든 불편함과 더위와 인파를 감수해야 한다면, 난 그냥 사진으로 볼래. 쉬러 갔다가 몸살만 얻어온 4박 5일이었어. 다신 여름에 동남아 안 가.

💡 여행 팁 정리

  • 여름 시즌은 피할 것: 6월부터 우기라고 하는데, 비보다 습도가 사람 잡는다. 그냥 찜통 속을 걷는 기분이니까 더위 많이 타면 절대 가지 마.
  • 단체 투어는 신중하게: 저렴한 맛에 혹해서 단체 투어 예약하면 사람에 치여서 아무것도 못 즐긴다. 돈 좀 더 주더라도 프라이빗 투어를 하거나, 그냥 마음 비우고 가야 해.
  • 교통은 무조건 그랩: 택시 기사들이랑 실랑이할 필요 없고, 지프니나 트라이시클은 현지인 아니면 도전하기 힘들어. 그냥 속 편하게 그랩 불러서 다녀.
  • 레촌은 껍질 위주로: 통돼지 바비큐인데 껍질은 정말 맛있어. 근데 살코기는 생각보다 느끼하고 퍽퍽할 수 있으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 벌레, 모기약은 필수템: 습한 날씨 때문에 벌레가 정말 많다. 특히 저녁에 야외에 있을 거면 모기 기피제 꼭 뿌리고, 물렸을 때 바를 약도 챙겨가.
  • 기대치를 낮출 것: 환상 속의 휴양지를 생각하고 가면 실망하기 딱 좋아. 그냥 ‘더운 나라에 바람 쐬러 간다’ 정도로 생각하고 마음을 비워야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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