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낯선 감정이 밀려온다. 23년 인생 중 내게 ‘진짜’ 여름이 찾아왔던 순간이 대체 언제였던가 싶다. 세무사라는 바쁜 직업 속에서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낯선 나라, 다낭으로의 3박 4일 여행은 내게 작은 모험이자 내면의 기억을 꺼내주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소심하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익숙함 바깥의 풍경을 마주할 땐 유난히 나 자신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내게 여행은 그간의 열정, 두려움, 허무함까지도 함께 껴안는 차가운 수건 같았다. 이번 다낭 역시 그랬다. 이 기록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20대의 여름이 담긴 한 편의 영화 같은 회상이다.
- 미케 비치
다낭의 더위를 뚫고 맨 처음 맞이했던 곳이 미케 비치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큰 짐을 내려놓고, 실내 슬리퍼 대신 샌들로 바꿔 신었다. 야자수가 늘어진 골목을 따라가면, 바람결에 느껴지는 소금기와, 뜨거운 모래의 기운이 피부에 남는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그리고 파랗다 못해 투명한 바다. 그 분위기에 빠져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환하게 펼쳐진 미케 비치의 햇살, 검게 익은 현지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파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멀찍이 바라봤다. 여름 햇살이 상상 이상으로 눈부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잔잔한 파도 소리에 마음이 먼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미케 비치로 가던 그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새벽 7시,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의 미케는 조용하고 경쾌했다. 해변 라인의 민트색 파라솔과 작고 둥근 빈백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맨발로 조심스럽게 모래를 밟아봤다. 발끝이 따갑도록 뜨거웠고, 그 열기가 묘하게 기분 좋았다. 아직은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았기에, 그 드넓은 해변을 마치 내 것처럼 누릴 수 있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마냥 불편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여기에 있다는 자체가 기적 같았다. 직장인의 삶에서는 감히 누릴 수 없던 해방감이었다. ‘나도 충분히 이렇게 쉴 자격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렇게 햇살을 쬐며, 파도가 발끝에 닿는 촉감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담아두려 했다.
수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소심함 탓에 멀리 들어가진 못했다. 그저 발끝만 살짝 바닷물에 담그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물의 온기와 내 손목의 맥박이 하나로 섞여, 이 순간들이 조용히 맴돈다.
- 호이안
두 번째로 기억되는 장면은, 다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 ‘호이안’에서였다. 여행 둘째 날, 호텔에서 예약해둔 반나절 투어를 통해 이 도시에 도착했다. 호이안이라는 이름부터가 나를 설레게 했다. ‘오래된 평안’이라는 뜻이란다.
노란 벽돌길,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 알록달록한 등불이 매달린 거리, 다홍빛 입구의 작은 가게들. 이국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정취였다. 현지인들이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뒷모습, 상점마다 가득 쌓인 수묵화와 나무 붓, 펄럭이는 베트남 전통 의상까지. 20대 초반의 내가 나오던 오전 뉴스 같은 익명성에서 잠시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던 드문 순간이었다.
호이안의 올드타운은 속도가 느린 동네였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뛰지 않았다. 내가 호텔 룸키를 만지작거리던 습관도 잠시 잊은 채, 건물 모퉁이에 기대어 등불이 점화되는 순간을 오래 지켜보았다. 저녁이 될수록 거리엔 다양한 빛깔의 등이 하나둘씩 켜졌고, 모양도 모양대로 제각각이었다.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이 어두운 하늘 아래 빛났다. 그 풍경은 사진으로는 절대 담길 수 없는 온기와 슬로모션의 시간이었다.
시장 골목 끝에서 미꽝 한 그릇을 시켰다. 쌀국수 위에 새우와 허브, 고명이 듬뿍 올려진 한 그릇. 용감하게 레몬즙을 짜고, 고수를 듬뿍 얹어 한 입 넣었더니 시원한 국물이 혀 끝에 울렸다. 단순한 면 요리였지만, 더위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던 몸이 함께 풀어지는 듯했다. 혼자 먹는 식사에 어색해하던 내가 어느새, 그냥 그 분위기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등불이 반짝이는 호이안 강가를 따라 천천히 산책했다. 붉은 등, 파란 등, 노란 등이 물 위에 흐르며, 마치 낡은 필름처럼 내 기억 속을 장식했다. 그저 한적하게 걷는 순간이 너무나 평화로웠다.
- 랑코 비치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곳은 랑코 비치였다. 다낭에서는 조금 떨어진 해변이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한적한 바닷가, 그리고 높게 뻗은 야자수들, 새로 생긴 듯한 작은 리조트 건물들이 양옆에 줄지어 서 있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를 따라 몇 분 걷다 보면, 바로 앞에 맑은 바다가 펼쳐졌다.
랭코 비치는 미케 비치보다 한결 더 조용했다. 어디선가 민트 향이 나는 것 같았고, 물가에는 말린 나무둥치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덥고 습해서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을 맞고 있으니 불평이 절로 사라졌다. 리조트 앞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구름이 하얗게 떠 있었고, 그 고요함에 나까지 투명해졌다.
랑코 비치에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모래 위에 신발을 벗은 채 앉아 있었다. 그때는 그저 여행이란 이런 식으로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휴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핸드폰도 꺼두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파도 소리, 야자수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초록벌레가 가늘게 울던 순간들이 아직도 귓가를 채운다.
숙소 근처 작은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볶음을 시켰다.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그간 바쁘게 살아왔던 감정이 천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고민하다가, 그냥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기로 했다. 소심한 성격도, 낯가림도 잠시 내려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 미선 유적지
여행 셋째 날, 미선 유적지로 향했다. 차로 1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고요하고, 하지만 잔잔한 비밀이 숨어 있는 곳 같았다. 참파왕국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유적지, 여기 저기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잡초와 나무가 무성했다.
첫인상은 마치 오래된 미스터리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벽돌 틈마다 이끼가 끼어 있었고, 뜨거운 습기와 묘한 냄새가 공기를 채웠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오래된 벽을 손으로 쓰다듬으니, 수백 년 세월의 흔적이 손끝에 닿았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세계가 눈앞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미선 유적지는 조용했다. 여행 와중에도 바쁘고 시끄러웠던 일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경험이었다. 혼자 걷다 보니 몸도 마음도 느긋해졌고,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낡은 건물과 울창한 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현실을 잠깐 잊고 먼 시대에 귀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놓칠 수 없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작은 돌 위를 걷다가 미끄러질까 봐 조심스러웠던, 그런 순간조차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미선 유적지를 나오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이란 표정을 내 얼굴에 새기며 걸어 나왔다.
- 다낭 시내와 현지의 일상
여행을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유명한 관광지뿐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길거리에서 마주친 작은 일상들이었다. 택시를 타고 다낭 시내를 오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일상 풍경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급하게 달리는 스쿠터, 모퉁이에 늘어선 식당, 카페 앞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바닥에 앉아 국수를 먹는 현지인. 여행자로서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 길거리에서 따뜻한 반미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들고, 작은 골목을 걷다가 낡은 창문에 달린 화분을 가까이 봤다. 그 옆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오래된 건물의 고양이가 졸고 있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패키지 여행을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처럼 경험이 많지 않은 여행자에게 안전망이 되어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숙소와 교통, 몇몇 투어 코스를 포함한 상품을 이용했다. 혼자 결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망설였지만, 덕분에 조금 더 쉽게 현지의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구조 안에서 불안함을 내려놓고,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즐길 수 있었다.
다낭의 밤은 또 다른 분위기였다. 야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길거리 노점에서 새우 튀김과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붉고 노란 조명이 번지는 골목길, 스치는 사람들의 언어가 노래처럼 들렸다. 밤공기가 더운 듯하면서도, 마음만은 가벼웠다.
짧은 일정이지만 모든 순간이 살아 있었다. 순간순간, ‘지금 이 경험을 놓치면 평생 아쉬울 것 같다’는 절실함이 스며들었다. 가끔 여행지의 저녁 공기, 골목 어귀의 향, 살아 숨 쉬는 듯한 낡은 상점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리움이 번진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다낭의 여름은 여전히 내 귓가에 머무는 듯하다. 자주 꺼내보기는 어려워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성적인 성격이었기에 남들만큼 화려한 인생샷을 남기진 못했다. 하지만 온전히 나만의 속도로,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그 3박 4일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생각한다. 다시 가고 싶다. 다시 한 번, 그 느린 여름과 뜨거운 모래, 한가로운 바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일상에 갇혀 있다 보면 잠시 잊혀지는 여행의 조각들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것을 느낀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소심한 관종인 나는, 오늘도 조용히 블로그에 여행기를 남긴다. 언제 또 다시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낭에서의 그 호흡, 색, 냄새, 공기, 그리고 한가로운 오후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 여행 팁 정리
- 해변은 아침 일찍 가기: 주요 해변은 이른 아침이 인파가 적고 햇빛이 부드러워 휴식에 적합하다.
- 그랩(Grab) 앱 미리 설치: 베트남에서 편리하게 차량을 잡기 위해, 국내에서 앱을 깔아두는 것이 좋다.
- 현지 통화 대비: 작은 상점이나 길거리 음식점에서는 현지 돈이 꼭 필요하니, 소액권으로 환전해두면 편하다.
- 우기 대비 우산 챙기기: 여름철은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자주 내리므로, 작은 우산이나 우비를 항상 휴대한다.
- 길거리 음식은 위생 확인: 맛있어 보여도 항상 조리 환경과 식재료 상태를 체크한 뒤 먹어야 한다.
- 주요 관광지는 사전 예약: 미선 유적지 등 인기가 많은 곳은 한국에서 미리 투어를 예약하는 것이 안전하다.
- 야시장 bargaining 필수: 다낭 야시장에서 쇼핑할 땐 흥정을 통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