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해도 3박 4일, 겨울 문턱에서 만난 나의 새로운 자화상
마음 한편에선 ‘혼자 여행하기엔 너무 낯선 곳이 아닐까’하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안심이 되었어요. 모든 일정이 짜여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자유롭게 느껴졌습니다.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 순간,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어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온몸을 정화시키는 듯했습니다. 가이드님의 안내를 따라 버스에 오르며 창밖으로 펼쳐진 하얀 풍경에 넋을 잃었어요.
삿포로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설경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하얀 눈이 내려앉은 나무들과 지붕들, 그리고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 이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완벽했어요.
“이곳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아요.”
버스 안에서 옆자리 일행에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는데, 그분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이었어요.
노보리베츠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지옥계곡의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순간, 이상하게도 생명의 근원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온천수, 그 원초적인 에너지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자연은 항상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쳐주는군요.”
온천에 몸을 담그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어요. 뜨거운 물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만들어내는 하얀 김, 그 속에서 나는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후라노로 향했어요. 여름에는 라벤더로 유명한 곳이지만, 11월의 후라노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하얀 눈으로 덮인 들판, 그리고 그 위로 드리워진 푸른 하늘의 대비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닝구르 테라스에 도착했을 때, 나무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숲의 속삭임에 귀 기울였습니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발아래 눈 밟는 소리.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이었어요.
“사진으로 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저 눈으로, 귀로, 온몸으로 그 순간을 느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항상 렌즈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던 나에게는 드문 경험이었어요.
비에이의 언덕에 올랐을 때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어요.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설원과 그 위로 점점이 박힌 나무들, 그리고 그 뒤로 우뚝 솟은 산맥. 너무나 압도적인 풍경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현지 농부 할아버지는 40년 넘게 이 땅을 일구며 살아왔다고 했어요. 험한 기후와 싸우며 작물을 키우는 삶, 그 고단함 속에서도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굴 주름 사이로 배어 나왔습니다.
“이 땅은 때로는 매정하지만, 정직해요.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보답하죠.”
할아버지의 말씀에 깊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나의 사진 작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진심을 다해 셔터를 누를 때, 그 순간의 진실이 담기는 것처럼.
소운코에서의 저녁은 특별했어요. 호수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물결 위에 은빛 길을 만들었습니다. 숙소 창가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어요.
그 순간, 문득 서울에서의 바쁜 일상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깨달았습니다. 항상 다음 촬영, 다음 마감에 쫓기며 살던 나에게 이 여행은 마치 오아시스 같았어요.
“여행은 떠나온 곳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창문인지도 몰라요.”
마지막 날, 오타루로 향했습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오래된 창고들과 가스등, 그리고 유리공예품 가게들이 과거로의 여행을 선사했어요. 석양이 물든 운하의 물결 위로 가스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타루의 작은 유리공방에서 만난 장인은 40년 넘게 유리를 불어왔다고 했어요. 그의 손길 아래 뜨거운 유리가 형태를 갖추어가는 모습은 마치 마법 같았습니다.
“완벽한 작품은 없어요. 다만 그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죠.”
장인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나도 사진을 찍을 때 완벽함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어쩌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불완전함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북해도를 떠나는 날, 치토세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지난 3박 4일을 되돌아보았어요. 카메라 메모리 카드에는 수백 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지만, 마음속에 담긴 기억은 그보다 더 선명했습니다.
이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어요.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카메라 뒤에 숨어 세상을 관찰하던 나에게,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법을 다시 일깨워준 시간이었어요.
여행은 끝났지만, 북해도의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온천,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행이 선물해준 새로운 시각으로 일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다시 서울로,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담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제 렌즈 너머의 세상만이 아닌, 내 감각으로 직접 느끼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 해요. 그것이 북해도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 여행 팁 정리
✔️ 11월 북해도 여행 시 급격한 기온 변화에 대비해 방한복과 레이어링 가능한 옷을 준비하세요
✔️ 온천 이용 시 문신이 있다면 미리 가리개를 준비하는 것이 좋아요
✔️ 북해도 현지 음식인 징기스칸(양고기), 해산물, 우유 디저트는 꼭 맛보세요
✔️ 오타루에서는 음악상자 박물관과 유리공예품 구경은 필수코스입니다
✔️ 겨울철 눈길 걷기가 많으니 미끄럼 방지 신발이나 아이젠을 준비하면 좋아요
Leave a Reply